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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눈에 좋은 대로 사는 인생!(삿 14:1~14)
2026-10-17 19:44:33
디지탈사역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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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사사 삼손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실인이다. 즉 한평생 하나님께 바쳐진 특별한 존재다. 하지만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다. 1절을 보면 삼손이 적의 도시인 딤나로 내려간다. 거기서 블레셋의 한 여인을 본다. 곧바로 돌아와 부모에게 결혼을 요청한다. 3절에 따르면 삼손의 부모는 가나안인과의 결혼이라 반대한다. 그들은 우상숭배에 깊이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3절 하반절을 보면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즉 ‘내 눈에 좋사오니’라 표현한다. 5절에 의하면 삼손이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간다. 본래 나실인은 포도나무에서 나온 모든 소산은 먹을 수 없다. 그런데도 삼손은 포도원에 간다. 그때 한 젊은 사자가 삼손에게 으르렁거리며 달려든다.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사자를 찢어 죽인다. 사자를 찢어 죽인 후 얼마의 시간이 흐른다. 그런데 가는 길에 자기가 죽인 사자의 시체를 보려고 한다. 분명 그는 나실인이다. 8절의 벌은 하나님의 sign(사인)이다. 삼손에게 사자의 시체를 만지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그러나 삼손은 이 경고를 깡그리 무시한다. 나실인으로서 사자의 시체에서 꿀을 퍼내서는 안되는 행동이다. 동물의 시체를 건드려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손은 꿀 앞에선 한없이 약해진다. 나실인의 서약이고 맹세고 신경 쓰지 않는다. 꿀은 일차적으로는 이방 여인을 가리킨다. 이차적으로는 이방 문화, 이방의 삶의 방식을 뜻한다. 나실인인 삼손은 이방의 삶의 방식을 선호한다. 삼손은 자기 눈에 좋은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의 판단과 결정과 행동의 기준을 보라. 오직 ‘자기 눈에 좋은 대로’다.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그러니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막 사는 것이다. 자기 눈에 좋은 대로 사는 비뚤어진 인생, 그게 바로 삼손이다.

오늘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떨까? 실제 삶은 삼손처럼 자기 자신이 우상 노릇을 하지 않는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달라야 한다. 입의 고백과 삶이 일치해야 한다. 모든 판단과 결정과 행동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 눈에 좋은 대로’ 살아야 한다. 자기 눈에 좋은 대로 살면 안 된다.

오늘 삼손의 삶은 신분(정체성)과 사명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우리 믿는 자들 즉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특별한 존재인지 모른다.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벧전 2:9). 과연 우리 하나님의 백성이 이루어야 할 목적은 무엇일까?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전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명인데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왜 오이코스 전도에 총력으로 집중해야 할까? 복음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이코스 전도에 헌신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가 삼손처럼 자신이 우상 노릇을 하면 안 된다. ‘자기 눈에 좋은 대로’ 살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인 사명을 놓치게 된다. 신분과 사명이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영광스럽고 특별한 신분을 꼭 기억하자! 신분과 사명에 일치하는 삶을 살자!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사명에 집중하자. 복음을 전해 영혼을 구원하는 사명에 헌신하자. 오이코스 전도의 사명에 순종하자. 끝으로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축복하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축복의 사람, 하나님 눈에 좋은 대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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