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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좋은 무화과(렘 24:1-10절)
2026-02-22 12:33:41
디지탈사역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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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는 종종 자신과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곤 합니다. 주관적인 생각에 갇혀 눈앞의 상황이 유리하면 축복이라 여기고, 불리하면 저주라고 단정 짓기 쉽기 때문입니다. 본문 당시 유다 백성들도 그러했습니다. BC 597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남은 이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라 자만했고, 포로가 된 이들은 버림받은 자들이라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두 광주리의 무화과 환상을 보여주시며, 인간의 얕은 생각을 깨뜨리시고 진정한 심판과 구원의 기준이 무엇인지 선포하십니다.

1. 좋은 무화과 (24:1~7) – 고난을 통해 빚어지는 남은 자

  하나님은 먼저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들을 극히 좋은 무화과라고 부르십니다. 인간의 눈에는 비참한 패배자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갈대아인의 땅으로 옮기셔서 오히려 보호하시고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고난은 그들을 멸망시키려는 독이 아니라, 죄를 씻어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한 연단의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 된 그들에게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주시어 그들이 전심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좋은 무화과의 핵심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이키는 회개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변화된 자들을 다시 세우고 심으시며, 결코 뽑지 않으시는 영원한 소망을 약속하십니다.

2. 나쁜 무화과 (24:8~10) – 교만과 불순종으로 인한 파멸

  반면, 예루살렘에 남아 있거나 애굽으로 피신한 시드기야 왕과 고관들은 나쁜 무화과에 비유됩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 전쟁의 재앙을 피한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를 거부하고 끝까지 자기 고집과 인간적인 꾀(애굽 의지 등)를 앞세운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잡혀간 동족을 비웃으며 자신들의 의로움을 과시했지만,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그들을 전 세계로 흩으시며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멸절시키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들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보다 눈앞의 안위와 자신의 판단을 더 믿었기에,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그곳에서 가장 비참한 수치와 조롱을 당하게 됩니다.

고난을 형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는 고난의 때에 어떻게 반응했는가입니다. 하나님은 책망과 징계를 통해서도 성도를 아름답게 빚어 가시는 선하신 분입니다. 인생의 참된 피난처는 바벨론도 애굽도 아닌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하늘보다 높은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며 겸비하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비록 지금 고난 중에 있을지라도, 전심으로 주님을 찾는 자에게는 그 고난이 오히려 하나님을 아는 마음을 얻는 축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만을 붙들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좋은 무화과로 변화시키시고 구원의 형통함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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