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교회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거센 세속화의 파도 앞에 서 있다. 세속화란 ‘하나님의 것’을 ‘인간의 것’으로 바꾸어 생각하는 것이다. 성경은 거룩과 부정을 엄격히 구별한다. 본래 ‘거룩’이란 하나님께 구별되어 드려진 것, 즉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인간이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성도들은 일주일 중 하루를 주님의 날(성일)로,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소유(성물)로 구별하여 드렸다. 그러나 지금은 주일도, 십일조도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나의 소유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라는 말씀이 무색해진 시대이다.
말라기 선지자 당시 유대 공동체는 성전과 성벽을 재건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페르시아의 초라한 속주에 불과했다. 예언된 영광은 나타나지 않았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백성들은 흠 있는 짐승을 바치고 제사장들은 율법 교육을 소홀히 하며 타락했다. 그들의 마음속엔 “하나님을 섬겨도 소용없다. 오히려 악인이 번성하는데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는 회의주의가 팽배했다. 이에 말라기서는 그 답을 이렇게 제시한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언젠가 성전에 홀연히 임하실 것이다. 다음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고 구원하시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분이 진정으로 정의의 하나님이심이 드러날 것이다.”
주께서 임하시는 날에 임할 무서운 심판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오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십일조와 봉헌물’을 제시하신다. 십일조는 단순한 액수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문제인 것이다. 즉 하나님께 어떻게 돌아가느냐의 문제이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나님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 저주 아래 있는 백성들에게 간곡하고도 특별한 초청을 하신다. ‘제발 나를 시험해 보거라!’ 원래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죄이지만, 오직 이 대목에서만은 당신의 신실함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약속하신다.
첫째,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신다.
둘째, 메뚜기를 금하여 토지소산을 보호하고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실
것이다.
셋째,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선포하신다.
십일조는 돈을 내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증명하는 신앙의 태도이다. 만약 지금 매사에 일이 풀리지 않고 질병과 사고와 나쁜 일이 끊이지 않는다면, 혹시 내가 하나님을 도둑질하며 그분을 떠나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최고의 우선순위를 드려야한다. ‘제발 나를 시험해 보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초청에 응답해야 한다. ‘그러면 내가 복을 쏟아부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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