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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요한복음 3:1~13)
2026-01-24 23:44:31
디지탈사역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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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바리새인 중에 한 사람이며, 유대인의 지도자로 소개되고 있습니다(1). 여러 주석서에서는 니고데모를 가리켜 산헤드린 공의회의 한 의원이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 상당한 유지요,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표적에 대한 궁금증으로 밤에 예수님을 몰래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표적을 행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놀라운 말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거듭남과 하나님의 나라는 필연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니고데모는 거듭남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 보입니다(4).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는 영적인 영역에 속합니다(5~6). 육적인 눈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는 영적인 일들에 관한 지식을 두고 사람을 3종류로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1. 무지한 사람. 예수님께 왔을 때 니고데모는 육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그의 영적인 무지를 깨우쳐주셨습니다.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거듭나지 않고서는 영적인 일들을 볼 수도 행할 수도 없습니다. 세상 대부분 사람들은 여기에 속합니다. 이들의 관심사는 육적인 일들 즉, 땅의 일에 관한 것뿐입니다.

2. 아는 사람. 영적 일들에 관해 아는 것은 거듭남이 필수조건입니다(3). 거듭남은 사람이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5). 여기서 물과 성령을 따로 나누어 물은 죄씻음혹은 회개’, 성령은 성령하나님의 역사로만혹은 성령세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남은 사람이 회개와 성령세례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물과 성령을 나누지 않고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이는 거듭남이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의 역사임을 강조합니다. 사람이 거듭나고 나서야 비로소 영적인 안목이 열리고 영적인 일들을 추구하게 됩니다.

3. 알고 믿고 행하는 사람. 거듭나고 영적인 사람이 되면 또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아는 것 따로, 믿는 것 따로라는 말은 성립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거듭난 사람은 행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신자인 것입니다. 그럼 신자는 어떤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요? 거듭나기 전에는 육적인 삶만 추구하던 사람이 거듭난 이후에는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7:48을 살펴보면 니고데모가 믿는 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고, 19:39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라고 기록된 것을 보면 니고데모는 행하는 자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영적인 일에 힘쓰는 자입니다. 영과 육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플라톤에 기인한 헬라철학은 영과 육을 엄격히 구분하고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인(全人)을 말합니다. 구원도 영육 모두의 구원을 말합니다. 축복도 범사에 축복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삼양교회 성도 여러분! 2026년에는 영적인 일에 더욱 힘쓰는 신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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